사회 | 2013.11.05

인터뷰 2013년11월2일 방폐장 유치 8주년

이진구 공동상임대표



 

 

2013년11월2일은 방폐 장유치 8주년이다.

방폐 장을 유치할 때만 해도 경주는 하나였다. 방폐장이 유치된 후 8년째 되도록 국책사업은 표류하고 있고 지역은 분열과 갈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만 깊어져 가고 있다.

당시 방폐 장 유치에 선봉장이 된 이 진구 유치원회 상임공동대표를 잠시 만났다. 이 대표는 “중·저준위 방폐 장 부지로 경주가 최종 확정이 있기까지 군산. 영덕. 포항과 함께 4개자치단체가 유치전이 치열 했다”고 회고했다.

 

◇ 그날의 함성이 아직도 쟁쟁한데

▶방폐 장 유치성공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방폐 장 유치전에 정상을 탈환 하던 날 경주시민들은 축제 판이 벌어지고 날 리가 났다.

2005년11월3일 새벽 주민투표에서 1위가 확정되자 경주시청 옥상에서는 100여발의 축하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시민들은 집이나 거리에서 환호성을 질렀고 밤잠을 설치는 시민들이 많았다

문화재 보호법에 묶여 50년간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해온 경주시민들에게 이런 기쁨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방폐장 유치때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

▶방폐장이 경주에 유치되기 까지는 정말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장식 포항시장이 어느 날 갑자기 기자회견을 통해 방폐 장유치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유치운동에 나선데 충격을 받았다. 이종근 경주시의회 의장은 간담회를 통해 전격적으로 경주유치를 통과 시켰다.

이어 경주시의회는 3대 국책사업유치위원회를 구성, 인센티브 3천억 원과 한수원 본사 유치, 양성자가속기 유치를 내걸고 시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회단체가 똘똘 뭉쳐 공동대표를 구성하고 전 시민들이 총궐기 하여 전국을 누비며 당위성을 주장한 결과 성과를 거두었다.

 

◇방폐유치 대가로 받은 거액의 지원금은 어디에 쓰였나.

▶방폐 장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로 현금 3천억을 받았다. 시민들의 생명을 담보한 돈이 아닌가.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묘사 떡 나눠 먹듯이 없애버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깜작 놀랐다.

일부 읍면동은 돈을 받아 놓고 쓸 곳이 없어 아직 시 금고에 예치해두고 있는 곳도 있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

한수 원 본사 이전에 따른 사택문제와 자립형사립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함에도 방폐 장을 유치한지 8년째 되도록 국책사업들이 표류하고 있어 안타깝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25%밖에 안 돼 적극적인 추진이 어려운데다 정부가 19년간 표류해온 방폐 장을 해결하기 이미 군산으로 내정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경주유치가 쉽지 않았다.

 

◇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처음엔 분위기가 부정적이 였다. 역전된 것은 그해 8월5일 4차 여론조사에서 54.5%가 나와 시장이 자신을 갖기 시작 하면서 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유치경쟁에 나셨던 것이다. 9월말 여론조사에서 영덕과 비슷했으나 특단의 대책을 세워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투표로서 군산을 이길 수는 없다고 판단한 시장과 추진위 공동대표들은 인물대결이 아닌 지역경제 살리기 대결이 되었을 때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추진했다. 단식과 삭발로 시민들을 감동시켰고 89.5%라는 높은 지지율로 승리했던 것이다.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상당수 경주시민들은 초반 투표율이 경주보다 10% 앞선 영덕이 포항과 함께 탈락하고 개표가 늦게 시작된 군산의 개표함이 개봉될 때마다 경주 찬성률과 비교하며 진땀을 흘렸다. 정말 드라마 같은 장면 이였다.

시민들이 현명한 선택으로 지역발전을 앞당길 기회를 스스로 잡았음에도 기회를 활용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난제들은 시장과 국회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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